사순절 서른 한 번째날(4월 9일) 묵상글 | 성우경 | 2025-04-0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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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의 범위"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태복음 5장 46-48절- “모든 개선식은 장례식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승전국이 기쁨의 축제를 하는 순간, 패전국은 죽은 이들의 장례식을 거행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승리의 영광을 즐기는 장군, 전리품과 보너스를 챙기며 기뻐하는 병사들 뒤로는 전쟁 중에 목숨을 잃은 수많은 병사가 있습니다. 그 가족들 역시 축제의 시간에 울고 있을 것입니다. 개선식은 그들의 장례식이기도 합니다. 장대익은 “공감의 반경”(바다출판사)에서 강한 공감이 오히려 갈등을 초래할 수 있음을 지적합니다. 어떤 집단이 강한 공감으로 묶여 있을 경우 외부인에 대한 배척과 적대감이 강해지기도 합니다. 전쟁은 극단적인 예입니다. 병사들은 조국과 동료에 대한 강한 공감을 바탕으로 싸우지만, 이 공감은 적군을 비인간화하고 폭력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공감이 ‘내집단’(we-group)에만 작용할 때 그것은 오히려 갈등과 분열을 부추기는 정서가 됩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족벌주의, 진영논리, 지역감정 등도 공감은 강하지만 그 대상 범위가 좁은 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사랑이 나와 비슷한 사람들, 내가 편한 사람들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자기 식구를 챙기고, 편한 사람과만 어울리고, 우리 편이 불의한 일을 겪을 때 분노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에수님의 사랑은 ‘내집단’을 넘어섰습니다. 한센병 환자를 만지시고, 세리와 죄인들과 식사하시며,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싫어하고 비난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초대교회가 출발할 당시 유대인들은 응집력이 강한 집단이었습니다. 초대교회의 역사는 유대인들의 응집력 강한, 그러나 배타적이던 신앙이 민족의 담을 넘어 확장되는, 공감의 범위가 넓어지는 과정이었습니다. 이 확장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치열한 논쟁이 있었고, 분열의 위기까지 있었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그 벽을 넘었고, 세계를 향해 선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작은 일부터 실천할 수 있습니다. 문안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평소에 인사하지 않고 그냥 지나치던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닮아가는 길이ᅟᅡᆯ는 파격적인 주장을 하십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라는 속담처럼 인간관계도 나와 가까운 사람들에게 치우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팔을 최대한 밖으로 뻗어 스트레칭하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되듯이, 관계에서도 스트레칭이 필요합니다. 안으로만 굽으면 활동 범위가 점점 좁아집니다. 관계 스트레칭으로 공감의 범위를 넓혀가야 합니다.
-돌봄과 회복을 향한 40일의 여정 <아무도 혼자 울지 않는다>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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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성우경 2025.4.8 13:25
‘내집단’이 아닌 ‘다른집단’도 얼마든지 포용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허락하여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