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스물 일곱 번째 날(4월 4일) 묵상글 | 운영자 | 2025-04-0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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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 있는 돌봄" 열 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마태복음 9장 20-22절- 끊임없이 피를 흘리는 혈루증은 부정한 병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이 병을 앓는 사람과 접촉한 사람도, 심지어 그가 앉았던 자리에 앉은 사람도 모두 부정하다고 여겨졌습니다. (레 15:19-21) 오늘 말씀 속 여인은 자연히 다른 이들의 세계와 분리된 세계를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 여인과 예수님의 만남은 두 인간의 만남이면서 동시에 두 세계의 만남입니다. 돌봄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은 다른 세계에 속해 있습니다. 장애인이 살아가는 세계는 비장애인의 세계와는 다릅니다. 장애인을 돌보는 가족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성 질환을 앓는 이들은 여러 편견에 시달립니다. 몸이 아플 뿐인데, 다른 세계에 갇혀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코로나19가 심각했을 때 우리는 두 세계의 경계가 얼마나 날카로운 긴장을 가져오는지 보았습니다. 방호복을 입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접해야 했던 방호복 밖 세계는 치명적인 위험의 세계였습니다. 돌봄은 이 경계에서 발생합니다. 이 경계에 서는 것, 아픈 이들에게 가까이 가는 것, 그들을 외면하지 않고 관심을 두는 것은 이 위험에 노출되는 일입니다. 코로나19가 한창일 당시 의료진들은 집에도 가지 못한 채 격리된 생활을 해야 했고, 그들의 자녀들은 학교에서 기피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병이 낫고 나서도 여전히 바깥 세계에 머물러야 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혈루증을 않는 여인의 육체적 질병이 치유되기 전에 먼저 예수님의 옷을 만진 일, 사회적 장벽을 넘어서는 일이 있었다는 것에 주목하십시오 예수님은 환자와 건강한 사람으로 분리된 두 세계의 중간에 계셨습니다. 하늘에서 땅을 찾아오신 그분이 서신 자리는 하늘과 땅이 접하는 경계를 이루었습니다. 이 땅에서도 사람들이 비교적 안전하고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영역보다 더럽혀지기 쉬운자리에 서셨습니다. 사람들이 가까이하지 않는 한센병 환자에게 다가가셨을 뿐 아니라 만지기까지 하셨습니다. 세리의 집에 들어가 식사하시고 친구가 되어주셨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여인이 다가와 머리카락으로 자신의 발을 씻기는 것을 허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계신 모든 자리가 위험한 경계였고, 그 자리에서 환대와 치유가 일어났습니다. 『아픔의 길이 되려면』(동아시아)의 저자 김승섭은 한국 사회에 만연한 사회적 폭력과 편견을 분석하면서 그 뿌리 깊음에 탄식합니다. 혐오의 비가 소나기처럼 쏟아지는데 멈출 수 있는 방법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 아파합니다. 그러고는 '쏟아지는 비를 멈추게 할 수 없으면 함께 비를 맞아야 한다."라고 고백합니다. 그 자리가 바로 예수님이 서신 돌봄의 자리입니다.
-돌봄과 회복을 향한 40일의 여정 <아무도 혼자 울지 않는다> 中 - |
댓글 1
박명제 2025.4.5 07:29
우리 공동체 안에 함께 하는 사랑이 넘쳐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