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2일주간 순모임자료 | 운영자 | 2020-03-2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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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가복음11:1-19절 개역개정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 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2.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3.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4.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5. 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이르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6.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7.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8.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10.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 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니라 12.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13.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14.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15.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16.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18.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19. 그리고 날이 저물매 그들이 성 밖으로 나가더라 *성경본문: 마가복음 11:1-19 *제목: 거짓 신앙과 심판 ♥ 마음 열고, 찬양과 나눔 •신자 되기 원합니다(새 463장, 구 518장) •지난 한 주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의 근황을 나눠봅시다. (들어가기) 14세기 개혁자 존 후스는 앞선 개혁자 위클리프의 저서에 실린 한 삽화에서 큰 충격을 받고 영적 개안(開眼)을 경험합니다. 삽화에는 가시관을 쓰신 초라한 예수님과 화려한 예복을 입은 부유한 교황의 모습이 대조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교회의 위선적 신앙을 직접적으로 묘사한 그림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진정 경계해야 할 것은 불신앙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말하나 그리스도를 전혀 닮지 않은 거짓 신앙입니다. ♥ 마음 다해, 말씀과 나눔 1. 예수님은 나귀 새끼를 탄 겸손한 왕의 모습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십니다(1-10절). 1)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준비토록 하신 것은 무엇입니까(2절)? -->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 (해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미 자신이 예비하신 방법으로 나귀 새끼를 준비하도록 하신다. 이는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을 그대로 이룬 사건이었다(슥9:9). 스가랴는 그리스도가 나귀 새끼를 타신 이유를 “겸손하여서”라고 말한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전쟁에 승리한 왕들의 입성 모습과 같았다. 예수님의 모습은 승리의 왕, 평화의 왕이었다. 그러나 보통 왕들이 승리의 상징으로 말을 탔던 데 비해 나귀 새끼는 볼품없는 짐승이었다. 그런 면에서 예수님은 겸손의 왕이심을 나타내셨다. 2)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에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합니까(8절)? 또 이들이 앞서 가고 뒤따르며 외친 말은 무엇입니까(9,10절)? --> 8절: 자신들의 겉옷과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폈다. 9,10절: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해설) 그들은 겉옷을 펴서 길에 깔았다(왕하 9:13). 어떤 이들은 나뭇가지를 길에 폈다. 종려나무 가지였다(요 12:13). 승리를 상징하는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거나 길에 펴는 것은 왕을 영접하는 의식이었다. 분위기가 고조된 백성들은 ‘호산나’라고 외친다. 이는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뜻이다. 백성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을 구원해줄 왕이라고 여겼다. 불행히도 그들이 기대했던 것은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해줄 하늘의 왕이 아니라, 부강한 나라를 세워줄 정치적인 왕이었다. <나눔1> 우리 왕이신 예수님은 겸손의 왕이셨습니다. 왕이 우리를 위해 이처럼 낮아지셨다면, 왕을 따르는 백성 또한 더욱 낮아지고 섬겨야 할 것입니다. 내가 더 낮아지고 섬기는 삶을 살기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실천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나눠봅시다. 2. 예수님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꾸짖으십니다(12-14절). 1) 시장하신 예수님이 발견하신 것은 무엇입니까(13절)? --> 잎사귀만 있는 한 무화과나무 (해설) 시장하셨던 예수님은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열매를 찾아가신다. 비록 아직 “무화과의 때”(13절), 즉 무화과 열매가 무르익어 추수할 때는 아니었다. 그러나 무화과는 잎사귀가 무성할 무렵 열매를 맺기 시작하기 때문에 이미 열매가 맺히고 있어야 정상이었다. 그러나 무화과나무는 기대했던 열매를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2)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향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14절)? -->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해설) 예수님은 무화과나무가 다시는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저주하신다. 예수께서 배가 고프셔서 화가 나신 것은 물론 아닐 것이다. 예수님은 이를 통해 중요한 영적 교훈을 제자들에게 주고자 하셨다. 잎사귀만 무성하고 정작 열매가 없는 나무는 쓸모없어 버려질 것이다. 바리새인들의 외식을 계속해서 경계해오신 예수님의 교훈과 그 맥을 같이한다. 이 사건 바로 다음에는 겉모습은 아름답지만 그 속은 강도의 소굴이 되어버린 유대인의 성전에 대한 기록이 있다. 겉은 그럴싸하지만 정작 속은 열매 없는 신앙은 쓸모없어 버려질 것이다. <나눔2> 그럴듯한 종교적 외형을 갖추고 있지만, 실상 그 마음과 삶에 주님이 없는 신앙을 가장 경계해야 합니다. 습관적이고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느꼈던 때가 있다면 서로 나눠봅시다. 3. 예수님은 겉만 화려할 뿐 온갖 탐욕으로 얼룩진 성전에서 소란을 일으키십니다(15-19절). 1) 예수님은 성전에서 어떤 일을 하십니까(15절)? 또 장사하는 이들을 향해 무엇이라고 꾸짖으십니까(17절)? -->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다.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셨다. (해설) 성전의 바깥뜰은 이방인들이 하나님께로 나아올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그러나 이제 바깥뜰은 장사하는 사람들로 가득해서 이방인들이 예배할 수 없었다. 원래 장사하는 사람들은 성전 밖에 있었다. 멀리서 제사를 드리러 오는 사람에게 짐승을 파는 이들, 로마 화폐를 성전에 헌금할 수 있는 세겔로 바꿔주는 환전상들이었다. 제사장을 포함한 성전 관리자들은 이러한 장사가 큰 이익이 된다는 사실을 보았다. 해서 아예 성전 바깥뜰에 자리를 내어주고는 자릿세를 받았다. 일종의 뇌물이었다. 횡행하는 뇌물은 성전을 ‘강도의 굴혈’로 만들었다. 이에 예수님은 분노하셨다. 2) 이러한 예수님의 행동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어떻게 반응합니까(18절)? --> 무리가 추종하는 예수님을 두려워하여 그분을 어떻게 죽일 수 있을까 하고 꾀하였다. (해설) 예수님을 죽일 방도를 논의했다. 그들의 탐욕을 여실히 드러내는 장면이다. 예수께서 밥그릇을 건드리자 그들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백성들의 눈치 때문에 대놓고 예수님을 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머리를 맞대고 방도를 논의한다. 예수님에 대한 그들의 태도와 백성들에 대한 태도를 견주어 보면 그들의 완악함이 더욱 드러난다. 그들은 예수님을 통해 선포되는 하나님의 책망은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백성들의 여론은 두려워했다. <나눔3> 기도하는 집인 성전이 몇몇 사람의 탐욕의 도구로 전락하였습니다. 신앙마저 욕망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것이 인간의 무서운 탐욕이요, 죄악된 본성입니다. 내가 늘 경계해야 할, 취약한 욕망은 무엇인지 서로 나눠봅시다. ♥ 마음 모아, 함께 기도 삶 _ 겉만 그럴듯한 위선적 신앙인이 아닌 참 신앙인으로 살게 하소서. 공동체 _ 교회 공동체를 자기 욕심의 도구로 삼지 않고 주님의 몸으로 사랑하게 하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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