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일 주간 순모임자료 | 운영자 | 2020-02-2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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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첫째 주 그룹큐티나눔(3월 1일 주간) *성경본문: 마가복음 3:1-19 *제목: 제자를 세우시다 ♥ 마음 열고, 찬양과 나눔 •나의 죄를 정케 하사(새 320장, 구 350장) •지난 한 주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의 근황을 나눠봅시다. <들어가기> 3월의 주제는 ‘종 되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입니다(1주 ‘제자를 세우시다’, 2주 ‘제자를 보내시다’, 3주 ‘제자의 고백과 삶’, 4주 ‘거짓 신앙과 심판’). 예수님은 무리에서 제자들을 구별하여 세우시고 그들을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세상으로 보내십니다. 제자들의 능력은 다른 데 있지 않고, 바른 신앙고백과 기꺼이 종이 되는 자기 부인의 삶에 있습니다. ♥ 마음 다해, 말씀과 나눔 1. 유대 지도자들은, 안식일에 손 마른 자를 치유하여 유대 사회의 금기에 도전한 예수님을 죽이기로 모의합니다(1-6절). 1) 예수님은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는 문제로 고발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무엇을 질문하십니까(4절)? -->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중에 어느 것이 옳은지 질문하셨다. (해설) 하나님은 선하시기에 선한 일 행하기를 원하신다(시 143:10). 안식일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면(출 20:10) 선한 일과 안식일을 지키는 일은 전혀 충돌하지 않는다. 율법은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주신 것이 아니라, 살리기 위해서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다(막 2:27). 예수께서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사실을 일깨우기 위해 질문을 던지신다. 2) 그들은 예수님의 질문에 어떤 태도를 보입니까(4, 6절)? --> 잠잠하였고, 예수님을 어떻게 죽일까 의논하였다. (해설) 당연한 답이 나와야 하는 질문에도 사람들은 침묵한다. 예수님을 증오하여 죽이려고까지 한다. 이들이 이러한 행태를 보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첫째, 예수께서 그들의 종교적 권위를 침해한다는 분노와 위기감 때문이었다. 둘째,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리기보다는 소위 ‘장로들의 유전’(막 7:5)이라고 부르는 인습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는 모세의 율법에 덧붙여진 세부 규정을 말하는 것으로 율법 자체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겨졌다. 그들은 관습에 집착한 나머지 율법을 지킨다고 하면서도 오히려 율법에 반하게 되었다. <나눔1> 잘못된 지식과 태도는 진리를 바로 보는 눈을 가립니다. 바른 신앙을 저해하는 나의 무지함이나 고집, 습관을 깨닫거나 발견한 적이 있다면 서로 나눠봅시다. 2. 많은 무리가 예수님께로 나아오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그들에게 자신을 알리는 일을 금하십니다(7-12절). 1) 무리가 예수님께로 온 이유는 무엇입니까(10절)? --> 예수님이 많은 사람을 고치셨기 때문에 병으로 고생하는 자들이 예수님을 만지려고 몰려왔다. (해설) 예수께서 갈릴리 지역에서 사역하시는 동안 큰 무리가 따랐다(7절). 그야말로 이스라엘 전역에서 사람들이 몰려왔다. 유대와 예루살렘, 이두매 지역은 갈릴리 남쪽 지역이며, 요단강 건너편은 동쪽, 두로와 시돈은 북쪽이었다. 이유는 본문에서 한 가지로 언급된다. 예수께서 많은 병자들을 고치셨기 때문이다. 치료받고 싶은 마음 자체가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본문이 단지 병 고침이라는 동기 한 가지만을 언급하는 것은 불안하다. 우리는 기적이 그치면 이내 불평으로 돌아섰던 출애굽 시기의 이스라엘 백성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2) 예수님은 그분의 정체를 말하는 귀신들에게 뭐라고 경고하십니까(12절)? --> 예수님을 드러내지 말라고 경고하신다. (해설) 예수님은 왜 귀신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경고하셨을까? 그 답은 앞서 등장했던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원들의 태도에 있다. 이후 그들이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고 간 주요 죄목은 ‘신성 모독’이었다(막 14:64). 그때 수많은 군중도 그들의 악행에 동참했다. 예수께서 그의 신성을 나타내면 나타낼수록 죽음에 가까워진다. 아직은 때가 차지 않았으므로 귀신들이 자신을 알림을 금하셨다. 또한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제한하는 일은 청중의 무지한 상태와 관계가 있다(눅 8:10). 병 고침을 위해 찾아온 백성들은 예수님을 반대하지는 않았으나 예수님의 그리스도 되심을 온전히 받아들일 상태 또한 되지 못했다. <나눔2> 내 필요 때문에 주님을 찾는 것과 예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고 순종하며 따르는 신앙 사이에는 커다란 간격이 있습니다. 나는 주로 어느 편에 서 있습니까? 내가 예수님을 찾는 것은 주로 어떤 이유 때문인지 생각해보고 서로 나눠보십시오. 3. 예수님은 그분의 뜻을 따라 열두 제자를 세우셔서 그분과 함께 지내며 동역하게 하십니다(13-19절). 1) 예수님은 무리 중에 특별히 몇 명을 불러 세우십니까(14절)? --> 12명을 특별히 세우셨다. (해설) 1-2장에 이미 베드로, 야고보, 요한, 안드레, 레위(마태)를 부르시는 장면이 등장한다. 3장은 의미를 따라 다시 정돈하여 기록한 내용이다. 1-6절에는 예수님을 반대하는 이들이, 7-12절에는 따르기는 하나 아직 온전한 제자가 되지는 못한 군중이 등장한다. 그들과 대조되는 이들이 여기 세워진 제자들이다. 복음서에 언급되는 제자는 12사도만은 아니다. 예수께서 파송하신 70명의 제자들(눅 10:1)을 포함해서 여러 제자들이 등장한다. 많은 제자들 가운데 12명을 따로 세우신 것은 구약의 12지파와 같은 신약 백성의 완성을 의미한다. 2) 예수님이 원하는 자들을 부르신 이유는 무엇입니까(14, 15절)? --> 그분과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셔서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셨다. (해설) 예수님은 자신과 함께하며 동역할 제자들을 세우셨다. 그들에게 권능을 주시며, 자신의 일을 나눠 맡기셨다. 무리는 단지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예수께 나왔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과 늘 동행하였다(14절). 군중은 단지 필요를 채움 받기를 원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었다. 마가는 사도들의 이름을 기록하면서 가룟 유다를 ‘예수를 판 자’라 고 콕 집어 언급한다. 예수께서 제자를 세우신 일에는 이처럼 가슴 무너지는 아픔이 있었다는 뜻이다. 이는 배신을 감내하실 만큼 제자들을 세우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셨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나눔3> 제자는 예수님과 늘 동행하고 동역하는 이들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무리가 아닌 제자로 세우길 원하십니다. 내가 ‘예수님과 동행하고 있다’, 혹은 ‘동역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적이 있다면 서로 나눠봅시다. ♥ 마음 모아, 함께 기도 삶 _ 주님과 온전히 동행하며 동역하는 제자의 삶을 살게 하소서. 공동체 _ 진리가 바로 서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로 풍성해지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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