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설교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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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9일 주일예배 설교(행 4:24~31)
운영자 2017-02-25 추천 0 댓글 0 조회 106

행 4:24~31(1~31),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

 

믿음은 두려움과 염려가 없다는 것입니다.여러분!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예수님을 믿고 두려움이 없어졌습니까?

(1)베드로와 요한은 지난주일 솔로몬 행각에서 모인 유대인들에게 <선천성 앉은뱅이를 일으킨 기적의 근원><예수 그리스도>임을 선포했습니다.A.즉 너희들이 이스라엘 역사속에서 그토록 믿어왔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과...우리가 이 앉은뱅이를 고친 기적의 동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은 <다른 하나님이 아니라 같은 하나님>임을 이야기하였습니다.B.<그러므로 그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지금이라도 회개하라(죄를 돌이키고,하나님께로 진정으로 돌아오라) 그러면 죄없이 함을 받게 되고, 새로운 날이 주어지게 될 것이다.(2)그런데 유대인들을 향한 베드로의 솔로몬 행각에서의 이 설교 때문에 베드로와 요한은 핍박을 받게 됩니다.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어서 감옥에 갇힙니다.

 

1.1~21.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성전 맡은 자사두개인들이 이르러 2.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1)1절을 보면 핍박을 주도한 사람들은 제사장들, 성전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었습니다.사실 그들이야말로 제일 먼저 하나님의 기적을 기뻐하고 찬양해야 할 사람들이었습니다.그런데 바로 그들이 처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반대하고 거부한 세력이 되었습니다.(2)여러분!이것을 보면,교회의 축복을 방해하는 것은 외부에서 오는 고난보다는 내부의 분열과 시기,자리다툼에서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2.3~43.그들을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4.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1)베드로와 요한이 전한 예수님의 복음을 통해서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자가 일어났고, 구원의 복음이 선포되었는데, 왜 핍박을 받게 되는 것일까요? 이상해 보이지만 그것은 당연합니다.즉 이단이 있다는 것은 진리가 외쳐지고 있다는 것이고,마귀의 역사가 있다는 것은 진리의 역사가 살아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그러니깐 성령님의 권능을 힘입어 진리를 선포하는 사람에게 어려움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두려운 일입니다.Ex)감리교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리가 어느날 말을 타고 가다가 문득 지난 3일동안 자신에게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그는 즉시 말에서 내려서 <땅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자신이 잘못한 것이 있다면, 알게 해달라>큰 소리로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마침 길 건너편에 있는 울타리 한 쪽 끝에 서 있던 어느 남자가 그 기도소리를 듣고 요한 웨슬리인 것을 알았습니다. 평소 요한 웨슬리를 달가워 하지 않았던 그 남자는 벽돌 하나를 집어서 요한 웨슬리를 향해서 힘껏 던졌습니다.그리고 웨슬리가 벽돌에 맞았습니다.그런데 벽돌에 맞은 요한 웨슬리는 그 남자에게 화를 내기는커녕 크게 기뻐하며 다시 기도했습니다.하나님! 감사합니다. 제가 아직도 당신의 임재가운데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2)여러분!오늘 본문에 선천성 앉은뱅이를 고친 기적의 통로인 베드로와 요한은 과거에는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버리고,부인했던 매우 두려워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그런데 이 행4장에서는 베드로와 요한에게 있었던 그 두려움이 사라졌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3.5~7이튿날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6.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하여 7.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1)3장에서 솔로몬 행각에서 설교하다가 잡힌 베드로와 요한이 감옥에 갇히게 되고, 45절이하는 감옥에 갇힌 그 다음날, 베드로와 요한을 심문하기 위해서 산헤드린 공회가 소집되었다는 것을 알게됩니다.여기서관리들(제사장들),장로들,서기관들(율법학자들)은 바로 산헤드린 공회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2)이렇게 모인 이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향해서 7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라고 묻습니다. A.여러분!(71명의 제사장, 율법학자, 장로들등으로 구성된)산헤드린 공회는 당시 유대 나라의 종교 정치를 통합한 최고의 재판기구요,권력기구입니다.여기서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것까지 재판합니다.B.과거에 예수님도 산헤드린 공회앞에서 사형선고를 받아서 빌라도를 통해서 사형집행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재판을 받으실 때 벌벌 떨던 베드로가 그분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던 바로 그 자리이기도 합니다.

C.그런데 과거에 예수님을 모른다고 벌벌 떨던 그 자리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다시 섰습니다.런데, 이제는 벌벌 떠는 자가 아니라 복음을 담대히 전하는 두려움이 없는 자들이 되었습니다.보십시오~

 

4.8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 ”/ 18~19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19.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1)예수님의 이름을 전하지도 말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위협하는 자들을 향해서 베드로가 무엇이라고 외치고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이렇게 당당할수 있는 힘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드로와 요한은 하나님 앞에서라고 말합니다.

(2)즉 지금 눈앞에 이스라엘의 최고 권력자 71명이 무서운 시선으로 베드로와 요한을 노려보고 있습니다.즉 그들은 과거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이었고,지금 예수님의 제자들도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앞에서 베드로가 본 것은 <산헤드린 공회보다 비교할수 없이 큰 하나님>이었습니다Ex) 개혁이 무엇인가? 내가 하나님앞에서(코람데오) 살고 있는 것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은 부패한 중세로마교황청과의 싸움이 아니었습니다.<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진실하게 사느냐>의 문제였습니다.여러분!누구를 비판하고, 어떤 공동체를 비판하는 것의 싸움이 아닙니다<내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진실하게 사느냐>의 싸움입니다.

(3)여러분!그런의미에서 어려운 환경과 나를 어렵게 하는 사람들을 만날때,그것들이 변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우리에게 있습니다.그러나 사실은 어려운 환경과 나를 어렵게 하는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그러니깐 그것은 근본적인 기도가 아닙니다.(4)그러면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바로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과 교제하고,그 분으로 충만해진 인생이 되면,우리 가운데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입니다.(더 큰 존재가 있음을 믿으십시오)

 

5.보십시오, 산헤드린 공회 회원인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자신들 앞에서 복음을 담대하게 전하는 베드로의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그들이 오히려 기가 질렸습니다. 12~13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13.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무엇입니까?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되면 누구나 담대한 믿음을 가질수 있습니다.(1)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할 때 보름스 회의 앞에서 종교재판을 받았습니다.당시의 종교재판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권한이 있는 무시무시한 것이었습니다.그런 곳에서 루터는 하늘을 쳐다보며 말했습니다.하나님이시여, 제가 여기 서 있습니다.”즉 루터는 하나님을 바라볼수 있었기 때문에 죽음의 위협앞에서 굴하지 않고 종교개혁을 할수 있었습니다. /7장으로 보면,스데반이라는 사람이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서 죽어갈 때,오히려 스데반은 그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용서하였습니다.“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어떻게 그럴수 있었을까요? 바로 스데반은 예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어떤 예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까? 7:55~56 스데반이 성령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그 예수님이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것이 아니라 보좌 우편에 서서 자신을 두팔로 안으려고 하시는 그 모습을 스데반은 보았기 때문입니다.무엇입니까? 눈을 들어서 내 앞에 계시는 하나님을 분명하게 바라보는 자가 되면,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로 담대히 나갈 용기를 갖게 됩니다.

(2)대학교 2학년때 친구(지금 목사)가 여름방학때 저희집에 놀러왔습니다.참고적으로 과거의 저희집은 10미터도 안되는 거리에 바닷가가 펼쳐져 있습니다.그런데 이 친구가 저희집앞에 이 바다의 광경을 보고나서 아무런 말이 없었어요.왜 그러냐?그랬더니 <바다를 아주 어렸을 때 보고 진정한 의미에서 처음보았다, 바다가 이렇게 넓은 줄 몰랐다> 우는 것이었습니다.(참고적으로 이 친구는 영화 고질라를 보면서도 울었습니다. 죽어가는 괴물 고질라가 불쌍하다)저는 항상 바다만 보았던 사람이거든요.늘 저희 집 앞 마당처럼 동해 바다가 펼쳐져 있고,그 바다에서 온갖 놀이를 하고 때로는 폭풍과 큰 파도도 보고, 갈매기떼가 유유히 <끼억 하는>소리를 들었던 사람이기 때문에 그 친구가 왜 바다를 보고 우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나중에 밤새도록 바닷가에서 이야기하면서,친구가 <이 바다를 보니깐 자신의 존재가 너무 작다>라는 생각에 울었다고 합니다.여러분!바다를 보면서 이런 감성과 느낌을 받는다면,하나님을 진정으로 바라본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요? 우리의 판단과 우리의 계획과 우리의 사고가 바뀌게 될것입니다.

 

(3)성경을 보십시오~~모세가 80세에 장인 이드로의 양을 치기 위해서 호렙산에 왔다가 떨기나무가운데 하나님을 만났습니다.신약성경의 바울은 사울이었을 때 그리스도인들을 붙잡으려고 다마스쿠스로 가다가 자기의 눈이 멀 정도로 환한 빛으로 임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그리고 그들 모두 완벽하게 뒤집어졌습니다.무엇입니까?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나고 예수님을 진정으로 아는 눈이 조금씩 열리게 되면,우리 스스로 인생을 이렇게 저렇게 살아야겠다고 궁리할 필요가 없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왜냐하면 두려움과 염려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6.산헤드린 공회의 71명의 공회원들도 두려움이 전혀 없이 복음을 전하는 <베드로와 요한을 어떻게 할수 없어서> 협박만 하고 그들을 풀어 줍니다.(1)그러나 사도들은 조금도 굴하지 않고 풀려난뒤 그들은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그들이 듣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이르되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은 이시요 (4:24)그들은 <살려 달라,도와 달라,어려움이 사라지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그들은 당당하게 하나님이 천지의 주재자이심을 고백하며 찬양했습니다. (2)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30.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4:29~30)한 마디로 감옥에 들어가도 좋고 매를 맞아도 좋으니, 오직 담대히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표적이 나타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그랬을때 그들의 기도에 하늘의 권능이 임했습니다.

(3)“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4:31)사도들은 더욱 성령 충만해졌습니다.다시 강력하게 성령이 임하신 것입니다.무엇입니까? 두려움의 영과의 싸움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순간순간 두려움의 영이 역사합니다.A.(211~12)베드로가 최초의 이방인 교회인 안디옥 교회를 방문했을 때, 이방인 성도들과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즉 베드로가 이방인과 식사를 하고 있을 때,마침 예루살렘에서 이방인들과 식사하는 것을 반대하는 유대인들이 왔습니다.즉 이방인과 식사를 했던 베드로는 슬며시 자리를 피했습니다.왜냐하면,베드로는 같은 유대인들로부터 비난받는 것과 논쟁하는 것이 두려웠던 것 같습니다.(2:12)이것을 본 사도바울은 베드로를 심하게 책망했습니다.

 

(4)A.여러분! 이상하지 않습니까?오늘 본문에서 71명의 산헤드린 공회원들 앞에서 담대했던 베드로가 또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서 피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B.무엇입니까?우리가 한번 들은 예수님의 복음으로, 한번 경험한 성령의 충만함으로 두려움을 이길수 없습니다.즉 어제 성령 충만함을 받고, 어제 주님을 생각하고 바라보았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C.리는 당시 사도들이 처한 상황과는 비교할수 없을 만큼 편안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그러나, 여전히 원리는 같습니다.오늘 이 시간 주님을 생각하고 바라보지 않으면 우리는 또다시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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