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서른 여덟 번째날(4월 17일) 묵상글 | 운영자 | 2025-04-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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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받는 실력"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마태복음 26장 38절- 신이 있다면 인간의 작은 고통에 초월한 존재일 것이라는 사람들의 기대가 있습니다. 로마의 지배 철학이던 스토아 철학은 ‘아파테이아’, 즉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를 목표로 했습니다. 사형 앞에서 의연하던 소크라테스가 그 모델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죽음 앞에서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동료도 아니고 갈릴리 어부들에 불과한 이들, 몇 시간도 못되어 뿔뿔이 흩어지고 도망갈 연약한 이들에게 약한 모습을 노출하다니요? 그런 약해빠진 사람을 신으로 숭배하다니요? 당시 사람들에게 얼마나 이상하게 보였을지 짐작이 갑니다. 성경은 죽음의 실재성과 그 고난의 깊이를 전합니다. 죽음은 인간을 괴롭히고 무너뜨리는 최후의 원수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이 죽음에 정면으로 맞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전쟁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죽음을 앞에 두고 제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신 모습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인간적인 면모와 겸손을 봅니다. 남을 도와주는 일에는 익숙한데 도움받는 것은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돌봄을 제공할 마음은 있는데 돌봄받는 상황에 놓이는 것은 끔찍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혼자 힘으로 끝까지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언젠가는 누군가의 선의와 친절에 의지해서 살므이 상당 부분을 보내야 합니다. 진정한 성숙은 남을 돌보아주는 친절에서뿐만 아니라 남의 도움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겸손에서도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자신의 고민을 토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셨습니다. 기도하는 순간에 함께 있어달라고 간청하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를 돌볼 수 있고, 또 돌봄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갓 태어난 인간의 아기는 세상의 어떤 동물보다 더 의존적(dependent)입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여기서 성장은 독립적(independent)이 되는 것입니다. 혼자 할 수 있는 일들이 점점 늘어나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닙니다. 진정한 성숙은 상호의존적(inter-dependent) 삶입니다. 한자로 사람을 뜻하는 인(人)은 서로 기대어 있는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힘든 이들에게 내 어깨를 내어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내가 힘들 때 누군가에게 기댈 줄 아는 겸손을 가진 사람이 참 성숙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그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일본의 사회학자 우에노 치즈코는 “장애인에 비해 노인은 돌봄 받는 데에 있어서는 초심자이다.”라면서 의존할 줄 아는 것도 일종의 능력으로 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일수록 돌봄받는 것을 힘들어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적극적 사랑뿐만 아니라 겸손한 연약함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돌봄과 회복을 향한 40일의 여정 <아무도 혼자 울지 않는다>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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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성우경 2025.4.17 10:42
우리 인생을 친히 돌보아주시고 인도해주신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에 늘 감격하며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