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서른 여섯 번째날(4월 15일) 묵상글 | 운영자 | 2025-04-15 | |||
|
|||||
"돌봄의 민감성"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마태복음 25장 37-38절-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은 성전에서 종말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최후의 심판대에 설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지극히 작은 한 사람”에게 어떻게 대했나 하는 것이 심판의 기준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마 25:35) 라고 하셨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곤궁에 처했을 때 너희가 외면했다고 하셨습니다. 외면했다는 말을 들은 이들은 “우리가 어느 때에”(마 25:44)라고 항변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도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기회가 닿으면 그러리라는 마음을 갖고 살아야합니다. 그러나 현실의 우리는 늘 분주합니다. 자신의 문제에 몰두해 있습니다. 타인을 돌보는 일은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입니다. 언젠가 시간이 나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 이웃도 돕고 봉사도 해야지 생각합니다. 이러한 무신경이 결국 예수님이 앞에 계셔도 외면했다는, 상상할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진 것입니다. 직접 예수님을 돌보아드렸다는 칭찬을 받은 이들도 “우리가 어느 때에”라고 놀라서 반문합니다. 평생 기억에 남을 만한 큰 선행, 신문에 보도될 만한 친절이 아니었습니다. 이소영의 “별것 아닌 선의”(어크로스)에는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나의 결점을 통해 타인의 빈틈을 알아보고 다정한 이해의 눈길을 보냈던 저 순간과 같은, 그런 알아봄의 경험은 정의를 구현하고 세상을 바꾸는 데 하등 쓸모를 갖지 못하겠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서로의 고통에 귀 기울이고 응답하는 가장 작은 방법이 되어 줄 순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채 그럼에도 매일의 발걸음을 떼어놓는 우리를 지탱해주는 것은 어쩌면 아주 사소한, 별것 아닌 것들일지 모른다.” 우리는 고난주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예수님의 고난, 인류 구원이라는 큰 이야기를 예수님은 우리 삶에서 작은 사랑을 실천하는 일로 연결시키십니다. 오늘 나에게 필요한 것은 목숨을 내놓고 주님을 따르는 일이 아닙니다. 거액의 헌금을 하거나 위험한 선교지로 나가야 하는 일도 아닙니다. 차 한잔, 따뜻한 말 한마디, 전화 한 통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의 작은 친절이 필요한 사람을 알아차리는 민감성입니다. 영성은 민감성입니다.
-돌봄과 회복을 향한 40일의 여정 <아무도 혼자 울지 않는다> 中 -
|
댓글 1
성우경 2025.4.15 09:58
민감하게 티안의 필요와 아픔과 기쁨에 동참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