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8일 주간 순모임자료 | 운영자 | 2020-06-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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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베드로전서2:1-10절 개역개정1.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2.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3.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6.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8.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7월 첫째 주 순모임 나눔(6월 28일 주간) *성경본문: 베드로전서 2:1-10 *제목: 주의 백성이 선포해야 할 일 ♥ 마음 열고, 찬양과 나눔 •흑암에 사는 백성들을 보라(찬송 499장, 구 277장) •지난 한 주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의 근황을 나눠봅시다. (들어가기) 7월의 주제는 ‘부름받은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1주 ‘주의 백성이 선포해야 할 일’, 2주 ‘황폐한 땅을 회복하는 길’, 3주 ‘보낼 자를 부르시는 음성’, 4주 ‘쓰임 받았으나 버려지는 인생’, 5주 ‘세상을 향한 선지자의 눈물’). 하나님은 세상에서 택하신 자들을 부르시고, 하나님 나라를 위한 그분의 일을 위임하십니다. 이는 우리가 걸어갈 거룩한 소명의 길입니다. ♥ 마음 열고, 말씀과 나눔 1.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신령한 젖, 곧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1:25)을 먹고 자라납니다(1-3절). 1)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버려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1절)? -->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 (해설) 악독은 남을 해하는 악한 행위를 포괄적으로 의미한다. 기만과 외식과 시기는 표면적 모습과 동기 사이에 차이가 있는 태도와 행동이다. 기만은 목적을 가지고 상대를 속이는 것이다. 외식은 속은 더러우나 겉으로 깨끗한 체하는 것이다. 시기는 보통 감춰진 질투와 미움이다. 모든 비방하는 말은 중상모략이나 험담을 의미한다. 결국 그리스도인이 지향해야 하는 삶의 모습은 그 마음과 말과 행동에 있어 선으로 일치되는 삶이다. 2) ‘신령한 젖’(말씀)을 사모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성장하여(자라나) 맺게 될 열매는 무엇입니까(2절)? --> 구원 (해설)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한다는 말은 조금씩 노력해서 마침내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구원은 우리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믿음을 통해 즉각적으로 얻는 것이다(갈 2:16). 구원은 즉각적인 것이지만, 우리가 그 구원의 완성을 보는 것은 천국이다. 구원은 이미 이루어졌지만,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다. 구원받은 주의 백성은 완성을 보는 천국에 이르기 전까지 구원받은 자로서 자라가야 한다. 이를 본문은 구원(의 완성)에 이르도록 자라간다고 표현하고 있다. <나눔1>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갓 태어난 아이와 같기에, 신령한 젖인 말씀을 통해 온전한 모습으로 자라가야 합니다. 거듭난 후 말씀을 통해 변하고 성장한 모습(신앙과 일상에서)은 무엇인지 서로 나눠봅시다. 2. 그리스도인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지만, 믿지 않는 이들은 그 돌에 걸려 넘어지고 맙니다(4-8절). 1)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은 누구입니까(4절)? --> 예수님 (해설) 사람들에게 버려졌으나 보배로운 산 돌로 예수님을 표현하는 것은 아래 건축자의 비유와 관계있다.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7절). 머릿돌은 그 건물의 기초가 되는, 건물을 대표하는 돌이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버린 바 되었지만,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는 머릿돌로 삼으셨다. 산 돌이라는 표현은 유대인들에게 메시아를 일컫는 표현으로 알려져 있었다. 돌이 살아 있다는 것에서 생명 되신 그리스도의 정체를 떠올리게 한다. 2) 보배로운 산 돌(모퉁잇돌)을 믿는 자는 어떻게 됩니까(6절)? -->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심판)을 당하지 않는다. (해설) 본문은 이사야 28:16을 인용한 말씀이다.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님을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 이사야 본문에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되어 있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이들은 죄의 부끄러움 속에 심판을 받을 것이다. 이 일이 다급함과 연결되는 것은 그 심판의 날이 도적같이 이를 것이기 때문이다(살전 5:2). 준비되지 않은 이에게 닥칠 심판이 다급함과 부끄러움을 가져다주리라는 것을 익히 상상할 수 있다. 3) 믿는 자에게는 보배로운 돌(7절)이지만, 믿지 않고 순종치 않는 자에게는 어떤 돌입니까(8절)? -->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 (해설) 예수님은 믿는 자에게는 구원이요, 생명이요, 능력이시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에게는 예수님이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이 된다. 예수님 시대의 종교지도자들을 생각해보라.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분노하고, 예수님의 존재를 미워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예수님은 진리이시며, 진리를 전하셨다. 그들은 진리에 속하지 않음으로 진리를 미워했다. 겸손히 회개하는 죄인에게는 진리이신 예수님은 구원이 된다. 반면 회개를 거부하는 죄인은 오히려 예수님께 걸려 넘어지며 자신의 심판을 자초한다. <나눔2>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믿었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걸림돌로 여기며 거부했습니다. 요즘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은 주로 어떤 이유로 예수님을 영접하거나 거부하는지 서로 나눠봅시다. 3.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을 통해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십니다(9, 10절). 1) 그리스도인의 네 가지 정체성은 무엇입니까(9a절)? -->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들, 거룩한 나라, 그의 소유된 백성 (해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하셨다. 그 이스라엘에게 주신 인류 구원의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다. 이제는 예수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이 영적 이스라엘이다. 그러므로 택하신 족속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된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왕과 제사장에게 기름을 부으셨다. 그러나 이제 믿는 모든 성도는 성령으로 기름부음 받아, 하나님께서 열방에 보내는 복음의 사자들이 된다. 이제는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 모든 성도가 왕 같은 제사장이다. 2)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세우신 이유는 무엇입니까(9b절)? -->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덕(구원의 업적)을 선포하게 하시려고 (해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서 기름 부으신 왕과 제사장을 통해 나라를 통치하시고, 열방에 자기 이름을 알리셨다. 이제 신약 시대는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의 통치가 예루살렘을 넘어,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왕과 제사장, 선지자들에게 국한 되었던 통치자와 선포자로서의 역할을 성령 받은 모든 성도들에게 주셨다. 성도는 세상이 그리스도의 구원을 보고, 그의 다스리심 앞에 굴복하도록 증거할 책무를 다해야 한다. <나눔3> 그리스도인(교회)은 세상을 등지거나, 세상과 척지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소명은 세상을 위해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각자 어떤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고 있는지 서로 나눠봅시다. ♥ 마음 열고, 함께 기도 삶_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가 아름다운 주의 집으로 세워지고, 주의 아름다움을 선포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공동체_ 코로나 19로 인한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소망이 되심을 담대히 선포하는 우리 공동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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