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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22일 설교원고 운영자 2017-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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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42 (122)

(지난주일)(1)A.2:1~13을 보면, 오순절날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성도들에게 성령님이 임재하였습니다.그리고 그 결과로 그들은 각 나라의 방언으로 말하였습니다.그 기이한 장면을 오순절(칠칠절)을 맞이하여 예루살렘에 모인 경건한 유대인들(디아스포라)이 보고 충격을 받습니다.왜냐하면,한번도 외국에 나가본 적이 없는 120명의 갈릴리 사람들이 각 나라의 방언을..각 경건한 유대인들이..알아듣도록 말하였다는 것은 그야말로 경건한 유대인들에게는 이해가 안되는 일이기 때문이었습니다.“어찌된 일이냐? 새술에 취했느냐”b.그러니깐,태초에 바벨탑 사건이후는 언어가 흩어졌기 때문에 결국 사람들이 사방으로 흩어졌고,서로간의 장벽을 쳤습니다.그러나 오순절날 성령강림사건은 사방에 흩어진 사람들(장벽을 친 사람들)을 하나로 모이게 했습니다.

(2)이후에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12제자를 대표하여 오순절을 맞이하여 예루살렘에 모여 있는 <경건한 유대인들과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설교를 하게 됩니다.(2:14~36)<이 짧은 설교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의 삶과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를 압축해서 풀어놓고 있습니다.A.첫번째설교의 요지는? 23절입니다.“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대로 내 준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없는 자들의 손들을 빌려 못박아 죽였으나<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의() 죄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셨다>라고 설교합니다.여러분!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나의 죄때문이다>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B.두번째 설교의 요지는? 베드로는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역사상 가장 흠모했던 다윗을 통해서 예수님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즉 베드로는 너희들이 그토록 흠모하던<다윗도 예수님을 직접 만났고, 다윗도 예수님의 부활을 예언했다> 라고 설교를 합니다.

(3)a.이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서 결론적으로 3,000명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그러면,어떻게 베드로의 설교에 이런 능력이 나타난 것일까요?(성령님이 하게 하셨습니다)32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B.베드로는 신학적인 이론을 설파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그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금 나와 함께하신다.”>라고 자기가 본 것을 직접 증언했기 때문입니다.직접 증인이 나서니깐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4)A.그런 의미에서, 어떻게 해야 세상이 다시 교회를 주목할까요?그것은 베드로처럼 부활하신 예수님, 부활하신 예수님이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고 계시고, 그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를 통해서 역사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직접 증언해야 합니다.그렇게 될때 세상은 우리를 바라볼 것입니다.

 

1.(1)A.그런 의미에서 우리 마음에 성령 하나님이 임하시면,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게 됩니다.10:19~20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20.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그러니깐 교회(성도)가 진정으로 성령님이 임하신 공동체가 되어가면,주님을 증언하는 일을 하게 되어 가고,은혜의 통로가 되어 갑니다. B.그런데,때로는 우리는 내 마음에 예수님(성령님)을 모시고 살고 있으면서도~은혜의 통로가 아니라.은혜의 종착역이 되려고 할때가 많습니다.(복과 은혜가 내 안에만 머물기를 원함)C.그런데 우리는 은혜의 통로들(복의 통로)이 되어야 합니다.즉 나를 만나는 사람들이 나를 통해서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내가 일하는 일터의 사람들이 나를 통해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2.(1)(14~36)베드로의 설교(십자가,다윗도 예수님 보았고, 예수님의 부활을 예언)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엄청났습니다.37그들이 이 말(베드로의 설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A.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마음에 찔림(:심장을 관통하는)을 경험했습니다.그러니깐,베드로를 통해서 주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내가 십자가에 못박았다니!>이것을 깨달았습니다.즉 성령님이 역사하셔서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지 않으시면,이런 죄책감을 가질수가 없습니다.(2)A.오랫동안 신학공부를 하게 될 때,두가지의 현상이 제 마음에 일어나더라고요~(A.하나님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모르겠다.B.너무 교리화된 제자신을 발견합니다.)그래서 <인간이 죄인이지.내가 죄인이다>라는 생각을 잘하지를 못했습니다.그래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 급급했습니다.B.그러다가,제 자존심이 깍이는 경험을 하던 어느날,<내가 죄인이다>라는 마음의 울림이 느껴졌습니다.즉 겉으로 보기에는 사람들로부터 착하다라고 평가를 받았던 제가 너무나 역겹게 여겨지기 시작했습니다.(성경은 다른 사람 얘기하는 것 아닙니다.나를 향한 이야기입니다)

(3)그런데,여러분! 역설적으로 하나님이 <내가 죄인이다>라고 느낄 정도로 내 마음을 치시는 것은 은혜입니다.A.그런 의미에서 이 세상 사람들의 가장 큰 불행은 무엇일까요?하나님이 나의 마음을 치셔도 조금의 찔림이 없다는 것입니다.B.어떤 신학자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대부분의 사람은 잠든 채 태어나서, 잠든채 살아가며, 잠든채로 결혼하고, 잠속에서 자녀를 낳고, 깨어나 보지 못한 채 잠속에서 죽는다>물론 그가 말하는 잠은 영적인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즉 저도 멍한채<나는 도대체 누구이며,인생이 진정 어디로 가는 것인지?>너무나도 막연하고 답답할때가 있습니다.그러다가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서 말씀을 보고,그 분의 뜻대로 조금이라도 살려고 하다보면,저의 잠든 모습을 불쑥 바라보게 되고,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C.바로 우리를 잠든 상태에서 깨어나게 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하나님의 말씀입니다.<하나님의 말씀!!>

 

3.(1)성경을 보면, 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깨닫는 자가 있습니다.A.37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즉 베드로가 전한 주님의 복음을 듣고 무리들이 찔림을 받았고 우리가 어찌할꼬라는 탄식이 터져나왔습니다.

B.이와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앞에서 깨닫는 자도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앞에서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754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57~58A“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성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스데반이 전한 주님의 말씀을 들은 유대인들도 마음에 찔림을 받았지만,그들은 스데반을 향해서 이를 갈고,돌로 치는방법으로 반응합니다.

C.베드로의 설교앞에서는 마음에 찔림을 받아서 3000명이 회개했지만, 스데반이 설교했을때는 마음에 찔림을 받은 사람들이 오히려 스데반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무엇입니까?진리의 외침앞에서 마음에 찔림받아서 회개하는 심령이 있을수 있고, 반대로 너무나 찔려서 그 진리에 대해서 부정적인 방법으로 거부하는 심령이 있을수도 습니다. D.그러니깐,우리가 주님의 뜻대로 살았을 때 우리를 통해서 3000명이 돌아올수도 있지만, 반대로 우리가 주님의 뜻대로 살았을 때 스데반처럼 손해를 볼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E.그러니깐,주님의 뜻대로 살다가 큰 교회가 될수도 있지만, 교회가 주님의 뜻대로 나아갔기 때문에 오히려 가장 작은 교회가 될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2)A.그러므로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도 항상 주님의 관점을 갖고 말씀을 전하도록 기도해야 하고요,어떤 결과가 있어도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B.반면에, 말씀을 듣는 성도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평가하는 자세가 아니라.우리가 어찌할꼬라는 탄식이 나와야 합니다.<어떤 목사님이 주일 예배를 마치고 성도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어떤 집사님이 악수도 하지 않고 다짜고짜 목사님에게목사님!오늘 설교!! 저 들으라고 하신거죠?하고는 획 돌아서서 가버렸다고 합니다.너무나도 당황스러워서 목사님은 아무 말씀도 못하셨지만,“아니, 그럼 설교를 들으라고 하지,듣지 말라고 하나?라고 마음속으로 외쳤답니다.>(3)A.물론 설교자가 설교시간을 통해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B.그렇지만,하나님을 말씀을 읽고 들을 때 저와 여러분이 마음에 찔림이 있고,이 말씀을 내 들으라고 한 것이다라고 깨달음이 있다면,그 사람은 영적 감각이 살아있는 것입니다.

(4)A.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회중의 반응과 스데반의 설교를 들은 회중의 반응은 <둘다 찔림을 받았다>는 것입니다.그런데 한쪽은 회개했고,한쪽은 설교자를 죽였습니다. B.그 이유는?설교의 내용이 달랐기 때문이 아니라,듣는 사람의 마음의 자세가 달랐기 때문입니다.(베드로의 설교앞에서-겸손한 마음-마음에 찔림-회개 /스데반의 설교앞에서-어떻게 하면 꼬투리를 잡을까?-스데반을 죽임)무엇입니까?말씀을 듣는자의 마음이라는 토양위에서 싹을 튀우고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C.여러분!바라건대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 말씀앞에서 늘 겸손한 마음이기를 소원합니다.

 

4.(1)37~38절상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A.공동체 안에서 예수님의 복음이 선포되고, 그로 인해서 마음에 찔림이 일어났다면,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가 어찌할꼬 하고>물어보아야 합니다.그리고 베드로가 제시한 처방처럼<너희가 회개하여~>회개해야 합니다.B.여러분!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앞에서 <나의 바닥을 보아야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복음 앞에서 <내가 죄인이구나>라는 절망감을 느껴야 합니다.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주님의 말씀과 십자가의 복음앞에서 <내가 죄인이다>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절망스러운 것이 아니라, 희한하게도 그때부터 소망이 시작됩니다.C.무엇입니까?십자가를 깨닫고 통과해야 진짜 부활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예를 들어서, 개헤엄 밖에 수영을 못하는데 <나는 수영을 잘한다>고 우기면, 평생 제대로 된 수영을 배우지 못합니다.*무슨 말입니까??내안에 어쭙잖은 자존심이 죽어야 합니다.*내 힘으로 무엇이든지 다할수 있다는 교만의 싹이 잘려야 합니다.*주님의 말씀에서 <내가 어찌할꼬>라는 절망을 선포해야 합니다.그때부터 성령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살려주시는 것입니다.

 

(2)38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A.세례는 결혼식의 의미입니다.즉 결혼이 남편과 아내가 하나(한몸)이 되는 것이듯이 세례는 <내가 회개하고 예수님과 하나가 되었습니다.>라는 고백입니다. B.세례는 장례식의 의미이기도 합니다.<내가 죽고 이제 주님으로 살겠습니다.>라는 의미입니다.C.그러니깐,세례는 진정한 회개의 삶을 살겠다는 결단입니다.그렇게 진정한 회개의 삶을 사는 자에게 성령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D.여러분!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회개하십시~그리고 진정으로 세례를 받으십시오.진정으로 세례를 받았는(나는 죽고 예수님과 함께 살겠습니다) 다시 확인하십시오,그때 성령의 권능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2)39~4139.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40.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41.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A.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진정으로 회개하고 세례를 받은 사람이 하루에 3000명이었습니다.그런데 이 자리에 과연 3000명만 있었을까요?아니죠? 이스라엘 3대절기인 오순절을 맞이하여 예루살렘에는 상당수의 경건한 유대인들과 무리들이 있었습니다.그러나 성경(41)은 이 자리에게 모여있는 사람의 수가 아니라,오직 회개한 3000명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무엇입니까?하나님이 주목하시는 사람들은 회개한 3000명의 사람들입니다.왜냐하면,하나님은 회개하는 사람,마음을 찢고 통회하는 사람을 가장 귀하게 보시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여러 성도가 교회에 모여서 함께 예배를 드린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회개하는 사람을 기억하십니다. B.그런 의미에서 이 시대의 교회(성도)회개하는 3000이 모이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즉 교회에 막연히 출석하는 3000명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나올 때 회개할줄 아는 3000명이 모이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C.그렇게 보면 남의 교회를 비판할 필요도 없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나부터 진정한 회개가 있는지? 우리 교회부터 진정한 눈물이 있는지?”를 다시 돌아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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