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순절 서른 일곱째날(4월 1일) 묵상글
- 운영자 2026.3.31 조회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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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숯불>
"문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하니 그가 말하되 나는 아니라 하고 그 때가 추운 고로 종과 아랫사람들이 불을 피우고 서서 쬐니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더라." -요한복음 18장 17-18절
우리는 가끔 오래된 앨범을 펼치곤 합니다. 해맑게 웃던 소년의 얼굴, 친구와 어깨동무한 모습, 다소 긴장한 결혼사진을 한 장씩 넘깁니다. 그러다 문득 거울 속 내가 어쩐지 낯섭니다. 사진 속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은 존재인가 묻게 됩니다. 시간은 우리를 깎고, 때로는 부서뜨린 듯 흩어놓습니다. 과거는 어느덧 멀어지고, 남은 것은 서글픈 아쉬움뿐입니다.
그러다 어느 날 한 자염ㄴ이나 소리, 혹은 냄새가 깊은 기억의 문을 엽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마들렌처럼, 잊었다고 믿었던 과거가 불쑥 되살아납니다. 사랑도, 아픔도, 수치도 여전히 내 안에 웅크리고 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베드로에게도 그런 마들렌이 있었습니다. 새벽의 닭울음-그 소리는 그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치욕을 새벽마다 되살리는 '기억의 과자'였습니다. 마음 한복파넹서 울려퍼지는 소리였습니다.
베드로에게 '숯불'은 낯선 것이 아닙니다. 대제사장 뜰에서 "나는 아니오."를 토해내던 그 밤, 그의 기억을 소환하는 바로 그 불-따뜻했으나 치욕의 표식이던 불이었습니다.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세상의 숯불 앞에 서서 잠깐의 온기를 얻으려 하지만, 그 불은 우리의 날들을 장작처럼 먹어치우며 타오르다 끝내 사그라집니다.
남는 것은 순간의 열기외 길게 드리운 후회뿐입니다. 대 그레고리우스의 말처럼 그 숯불은 "베드로의 가슴에서 사랑의 불이 꺼졌고, 그는 박해자들의 숯불로 자신을 데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현세의 온기로 나약함을 덧대려 한 불이었습니다.
<중략>
우리도 각자의 안트라키아, 곧 숯불 앞에 서 있습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 삶의 자리에서 세 번째 숯불, 곧 용납의 숯불을 피워주십니다. 실패의 기억을 덮으시고, 끊어진 시간과 사랑을 다시 이어주십니다. 주님의 모닥불에서 우리는 다시 일어나 사랑을 새롭게 고백하고, 주님께 붙잡혀 얼마든지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기>
주님, 제 지난날은 숯불 앞에서 당신을 외면한 흔적으로 가득합니다. 그럼에도 제 곁에 세 번째 숯불, 용납의 숯불을 피워주시니 감사합니다. 수치의 기억을 은총의 기억으로 바꾸시고, 이제는 주님 앞에서 "주님, 사랑합니다." 고백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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