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순절 서른 여섯째날(3월 31일) 묵상글
- 운영자 2026.3.31 조회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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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제자 한 사람>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이 예수를 따르니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라 예수와 함께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가고." -요한복음 18장 15절
사람이 겪는 가장 깊은 고통은 사랑하는 이에게서 버림받는 고통이라고 합니다. 베드로가 연거푸 세 번 "나는 아니오"라고 부인했을 때, 그에게 남은 굴욕과 상처는 십자가의 못자국과 창에 찔린 자국을 떠올리는 우리의 마음마저 깊이 찌릅니다. 크리소스토무스는 말합니다. "베드로가 여기서 경험한 굴욕은 나중에 그가 죄지은 이들을 대할 때 겸손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부활 후 주님은 디베랴 바닷가에서 그를 다시 찾아 세 번 물으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의 부인만큼이나, 세 번의 사랑 고백을 일으켜 세우시는 은혜의 물으심이었습니다. 암브로시우스는 이 장면을 이렇게 풀이합니다. "양 떼를 돌보도록 직접 선택받은 이는 베드로입니다. 그는 같은 질문을 세 번 듣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믿음의 양식으로 양 떼를 돌봄으로써 과거의 죄를 씻었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세 번 부인한 그에게 주님은 세 번 사랑을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상처의 자리를 사명의 자리로 바꾸시며 세 번의 부인을 세 번의 사랑으로 되돌리십니다. 그런데 이 회복의 서사 곁에는 다른 어둠이 있습니다. 그 밤, 뜰 안에는 베드로만 있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은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이 그 자리에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그는 누구였을까요? 교회의 전통은 그를 사도 요한 자신으로 봅니다. 대제사장 집안과 안면이 있었던 그는 베드로를 안으로 들여보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더 묘한 것은, 평소 자신을 '사랑받는 제자'로 기꺼이 기록하던 그가 이 순간만은 '또 다른 제자'라는 이름 뒤로 물러섰다는 점입니다.
<중략>
내 안에도 이 두 얼굴이 있지는 않습니까? 때로는 베드로처럼 드러내놓고 넘어지고, 때로는 요한처럼 아무도 모르게 외면합니다. 입술로는 부인하지 않았어도 마음으로는 수없이 "나는 아니오."를 되풀이합니다. 우리도 결국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아닐지요.
사순절은 그 자리에서 나를 직면하는 시간입니다. "나는 아니오."라고 말한 나를 덮으신 주님의 사랑을 기억합니다. 은총의 빛이 나를 그늘에서 양지로 옮기실 것을 믿고 기다립니다.
<기도하기>
주님, 수없이 당신을 모른다고 한 저입니다. 그럼에도 제 이름을 덮어 주시고 저를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으로 품어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제 은밀한 외면을 고백하오니 씨앗이 어둠에서 자라듯 제 삶을 새로이 자라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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