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순절 서른 한째날(3월 25일) 묵상글
- 운영자 2026.3.24 조회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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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그대들이 감당할 수 없더라도>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요한복음 16장 12-13절
우리는 주님을 믿고 따른다고 고백하면서도 기도의 응답이 들리지 않는 긴 침묵의 시간을 자주 통과합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눈앞의 문제에 대한 대답을 듣고 싶지만, 주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는 듯합니다. 그러면 마음은 금세 흔들리고, 그 무언의 시간 속에서 더 깊은 불안이 자라납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주님은 응답을 아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 감당하지 못하기에 잠시 침묵을 택하시는 분입니다. 이 침묵은 방치가 아니라 준비입니다. 씨앗이 흙 속에 묻혀 있을 때 겉으로는 고요하지만 그 안에서 이미 뿌리가 자라나듯, 주님의 침묵 속에서도 아직 우리의 그릇이 담아내지 못할 은혜가 우리 안팎에서 조용히 자라나고 있습니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말씀이신 주님께서는, 지금은 감당하지 못하지만 훗날 감당하게 되고, 마침내 밝히 드러날 것들이 있음을 넌지시 비추셨습니다." 주님의 침묵은 비어 있음이 아니라, 장차 드러날 그 충만을 담아낼 넉넉한 그릇을 우리 안에 빚어가시는 시간입니다.
<중략>
사순절의 침묵은 실패의 공백이 아니라 은총을 품은 기다림입니다. 당장은 응답이 들리지 않아도 성령께서는 씨앗을 키우시고 새벽을 예비하시며 보이지 않는 길을 여십니다. 우리의 눈에는 가려져 있어도 물밑에서는 언제나 그분의 뜻이 우리를 붙들고 은혜가 흐릅니다. 흙 속의 씨앗이 대가 차면 싹을 틔우듯 부활의 시간 또한 우리를 향해 조용히 다가오고 있습니다.
<기도하기>
주님, 침묵 속에서도 일하시는 주님을 신뢰합니다. 흔들릴 때마다 흙 속의 씨앗처럼, 새벽빛처럼, 물밑의 흐름처럼 제 삶을 빚으시는 성령의 손길을 보게 하소서. 사순절의 기다림 속에서 주님의 깊은 뜻을 감당할 그릇으로 저를 다듬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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