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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7일 (9월 둘째주) 순모임 자료
운영자 2021.9.7 조회 247

9월 둘째 주 그룹큐티나눔, 갈라디아서 4:1-11

언약 백성 2- 종이 아닌 아들이 되라

 

마음 열고, 찬양과 나눔

-찬송가 436(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신앙생활은 그 근거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모든 것에서 자유롭다고 느끼기도 하고, 반대로 정해진 규칙과 의무에 묶여 있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성도는 율법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와 성령을 보내신 것은, 죄와 사망에서 우리를 구원하셔서 그분의 자녀로 삼기 위해서입니다. 이 복음을 받고도 여전히 율법에 사로잡혀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살아간다면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참된 자유를 누리며 살아야 할 존재입니다.

 

마음 다해, 말씀과 나눔

1. 그리스도인은 더는 율법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입니다(1-7).

1) 바울은 하나님의 자녀가 율법(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던 상태를 무엇에 빗대어 설명합니까(1-3)?

(1)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2)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나니 (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

 

정답 유업을 이을 자’(주인의 아들, 후사)가 성인이 되기 전에 그를 양육하는 관리인(후견인, 청지기) 밑에서 마치 종처럼 양육되는 것에 빗대어 설명한다.

 

[설명]로마 사회에서 후견인(‘에피트로포스’)은 집안의 재산과 사람을 관리 감독하는 사람을 의미하고, 청지기(‘오이코노모스’)는 이전에 노예 신분이었지만 주인의 신뢰를 받아 자유인이 되어서 주인의 집을 관리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주인의 아들은 성인이 되기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밑에서 훈육을 받아야 했다. 바울은 하나님의 자녀가 일정 기간 초등학문밑에서 종노릇 하였다고 빗대어 말한다. 초등학문(스토이케이아)은 세상을 구성하는 기본 원소, 또는 하나님이 아닌 영들을 의미하기도 한다. 초등학문 아래에 있다는 것은 유대인은 율법의 한계 아래에, 이방인은 세상의 가치 아래에 종속되어 살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2) 하나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셔서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4, 5)?

(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정답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고 하나님의 아들로 삼기 위해서.

 

[설명] 하나님이 예수를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이유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서다. 마치 로마 사회에서 청지기 밑에서 교육받던 자들이 성인이 되어 아들의 신분으로 회복되어 아버지의 유산을 받아 누리는 것과 같다.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이 주는 사망의 한계를 벗어난 최초의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셔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게 하셨고(고전 15:20), 예수를 믿는 모든 자가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15:23). 더 이상 율법이 죄와 사망의 한계 안에 그리스도인을 가둘 수 없다. 예수와 연합한 자는 죄와 사망의 굴레에서 벗어나서 성령 안에서 자유를 누리며 말씀의 통치를 받을 수 있다.

 

3)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심으로써 일어난 변화는 무엇입니까(6, 7)?

(6)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7)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정답 이제는 종이 아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며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받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설명] 6, ‘그 아들의 영은 성령을 의미한다. 즉 성령을 통해 율법 아래 있던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으로 회복된다. 그래서 하나님과 언약 관계가 회복되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친근하게 교제를 나눌 수 있다. 또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하나님 나라 유산을 받아 누릴 수 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예수님의 희생이 있었기에(1:4; 4:4,5), 자유와 해방의 길로 인도한 성령의 역사가 있었기에(4:6),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율법의 한계에 갇혀 있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이것은 영적인 방종의 삶이 아니다. 성령을 통해 말씀의 선한 통치를 받으며 사는 것을 의미한다(5:1,13-24).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며 예수와 연합하여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이다.

 

나눔 1 그리스도인은 더는 율법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규칙을 어기면 처벌받을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녀로서 자유를 누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구원이 가져다준 자유를 누리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 무엇인지 서로 나눠 봅시다.

 

나눔 2 율법이 아닌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율법을 다 지켜서 자유를 얻으려다간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겠지만, 우리 마음속에 계시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일깨워 주시고 우리 삶을 지도하시는 성령님

덕분에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유를 누리며 살도록 성령님이 어떻게 도우시는지 나눠 봅시다.

 

2. 바울은 성도가 복음을 알고도 여전히 율법 아래에 있는 것을 안타까워합니다(8-11).

1)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의 어떤 모습 때문에 탄식하고 있습니까(8, 9)?

(8)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 하였더니 (9)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정답 하나님을 알고 있는데도 여전히 다시 초등학문’(율법)으로 돌아가서 종노릇하려는 것을 탄식한다.

 

[설명]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자유를 얻은 이들이 다시 옛 초등학문’(스토이케이아)으로 돌아가서 종노릇 하려는 것은 너무 어리석은 행동이다. 유대인에게 스토이케이아는 율법이며, 이방인에게 스토이케이아는 로마 사회를 뒤덮고 있는 당시 우상 체계와 세속적 가치들일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하나님께서 예수를 희생하면서까지 그의 백성을 속량하셨는데 다시 옛 삶으로 돌아가서 종노릇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는 패역 행위나 마찬가지다. 이것은 마치 구약 광야 백성이 가데스바네아에서 약속의 땅을 지척에 두고도 하나님의 인도를 불신하여 환() 애굽 운동을 일으킨 것과 같다. 은혜의 현장 앞에서도 다시 이전의 종의 삶을 고집한다면 하나님 나라 유산을 받을 자격이 없다.

 

2) 바울이 유대교의 절기를 지키려고 고집하는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을 보면서 염려하는 것은 무엇입니까(10, 11)?

(10)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11)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정답 바울이 이제까지 전한 복음이 다 헛수고가 될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

 

[설명] 유대 절기는 안식일 전통의 절기들을 의미한다.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칠칠절, 나팔절, 대속죄일, 초막절, 안식년, 희년 등이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참조. 23,25). 유대의 이 절기 중 어떤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미 성취되었고 또한 어떤 것은 재림을 통해 미래에 성취될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부활, 성령 강림, 재림, 종말의 완성 등 구약의 모든 절기는 성삼위 하나님의 구원 사역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서 이미 성취된 율법의 정신은 뒤로하고, 율법의 전통에 매여 산다면 바울이 이제까지 전한 모든 복음의 가치를 의미 없게 만들 수도 있다. 바울이 염려하는 것은 단지 갈라디아 성도들과 관계가 서먹해지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쓸모없게 되는 것이다.

 

나눔 3 영광스러운 복음조차 헛수고가 되게 하는 전통은 껍데기일 뿐입니다.

아무리 오래된 전통과 형식이라 할지라도 복음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라면 마땅히 재고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령 충만한 삶을 위해 과감히 변혁해야 할 전통은 무엇인지 서로 나눠 봅시다.

 

중보의 기도 (마음 모아, 함께 기도)

1. 더는 맹목적인 율법주의에 빠져 살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유를 누리게 하소서.

2. 형식적인 껍데기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령 충만한 예배를 드리게 하소서.

3. 죄와 사망의 종살이가 아니라 성령의 인도로 아들 살이 신앙생활을 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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