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설교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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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6일 주일예배설교(행 4:32~37)
운영자 2017-03-04 추천 0 댓글 0 조회 89
[성경본문] 사도행전4:32-37 개역한글

32.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34.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줌이러라

36.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번역하면 권위자)라 하니

37.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4:32~37(내 소유보다 더 중요한 것)

 

(1)A.3장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서 선천성 앉은뱅이를 고친 후에,..그 기적을 기이히 여기는 유대인들에게 이 기적의 동인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합니다. B.그런데 바로 베드로가 그 기적의 동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한 것 때문에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43),C.그리고 산헤드린 공회앞에서 심문을 받게 됩니다.(4) 당시 유대의 종교와 정치를 통합한 최고의 재판 권력기구인 (71)산헤드린 공회는 사람을 죽이고 살릴수 있는 막강한 기구였습니다.즉 과거에 예수님의 사형선고를 선언했던 곳이 이 산헤드린 공회이고,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그 두려움의 자리 또한 산헤드린 공회입니다. D.그런데 과거에 두려움 때문에 예수님을 모른다고 도망갔던 그 산헤드린 공회앞에서 베드로는 이제는 예수님의 복음을 담대히 전하는 두려움이 없는 자가 되었습니다. 19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이렇게 당당할수 있는 힘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바로 산헤드린 공회보다 비교할 수 없이 큰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1.그 이후에 나타나는 오늘 본문은 행242~47절과 더불어 초대교회는 어떤 교회였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본문입니다.432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고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1)A.여기서 믿는 무리라는 표현이 흥미롭지 않습니까?즉 성도란 단순히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B.그런데 이 예수님을믿는 무리한마음과 한뜻이 되었습니다.(2)A.그리고자기 것이라는 개념이 없어질 만큼 성도들은 서로를 사랑했습니다,더 많이 가진 사람은 덜 가진 사람과 함께 나누고 유무상통의 삶을 살았습니다.이것이 초대교회였습니다.B.사실 목회자로서 가장 꿈꾸고 있는 목회의 비전은 <성도들이 서로를 사랑하는 행복한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그러나 오늘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교회의 소식들을 들으면서,성도가 서로를 사랑하게 만드는 것은 결코 쉽지 않는 일임을 알게 됩니다.C.그렇게 보면,초대교회가 이루어낸 유무 상통의 삶을 사는 것은 결코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3)A.어떻게 보면,<유무상통의 삶>을 사람의 힘으로 건설하겠다고 만든 이념이 공산주의입니다.하지만 이상적인 사회라고 생각했던 공산주의는 두려움의 영이 임하고 더 가난하고, 죄악이 판을 치는 나라가 되어 버렸습니다.B.그런 의미에서 초대교회의 모습을 보면,오늘날 우리가 품어야 할 교회의 목표는?백명,천명,만명의 성도를 모이는 것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C.즉 문자적으로는 똑같이 할수 없겟지만,그래도 우리가 꿈꾸는 교회는 행2장과 오늘 4장에 나오는 정신을 이루어 가는 교회공동체를 꿈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이 꿈은 덜 가진자들도 꿈꾸어야 하지만,더 가진자들도 이런 교회가 되도록 꿈꾸어야 합니다.왜냐면 그것이 진짜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4)여러분! 생각을 해 보십시오.A.<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주어도 좋을만큼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 행복한 것입니까?> 아니면 <없는 것이 행복한 것입니까?> B.여러분!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서 받는 복은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왜냐하면 돈보다 더 좋은 예수님을 우리의 마음에 모셨기 때문이고,하나님 앞으로 돌아갈 때 돌보아야 할 이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누지 않는다면 그것이 두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2.(1)19장에는 여리고의 삭개오”“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이 사람은 원래 여리고라는 도성에서 욕을 많이 먹었던 세리장이었습니다.즉 남의 세금을 더 착취하고 그래서 재산을 축적했던 사람이었습니다.그런데 그랬던 그가 예수님을 진정으로 모신 이후에는 잘못된 방법으로 재산을 축적한 것을 알았기에 자신의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19:8)이런 삭개오가 행복해 보이십니까?불쌍해 보이십니까?(그렇죠)(2)반면에 마 19장에는 부자청년이 등장합니다.부자 청년은 어느날 예수님에게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습니까?”예수님이 십계명을 다 지켰냐?부자청년은 자신있게 이 계명을 내가 어렸을때부터 다 지켰습니다.그랬더니 예수님이 그런데 너에게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는데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잇을 것이다.그런데 이 말씀을 들은 이 부자청년은 근심하며 갑니다.즉 삭개오와 똑같이 예수님을 만났음에도 이 부자청년은 근심과 두려움만 품게 됩니다.왜 그렇습니까?그는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는 것의 부유함이 무엇인지 알지 못햇기 때문입니다.(3)A.하나님이 우리에게 넉넉함을 주셨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 복이 아니라,다른 사람을 도울수 있기 때문에 복인 것입니다.B.즉 예수님과의 관계는 내 소유에 대한 마음으로 점검할수 있습니다.C.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삭개오와 같이 내 소유의 일부를 나누어도 행복한 믿음을 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3.오늘 본문을 보면, <요셉>이라는 사람은 가난한 성도들을 도우려고 <자신의 밭을 나누었습니다.>결국 이런 삶을 산 요셉은 사도들로부터 바나바(위로의 아들)”라는 칭찬을 받습니다.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이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하니,그가 밭에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4:36~37)”여러분!이런 요셉(바나바)의 삶은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고,예수님 안에 있지 않으면,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으면 있을수 없는 일입니다.(1)중국 공산당이 교회를 핍박할 당시에,중국 지하교회에서 과수원을 운영하였습니다.어느날 한 중국공산당 관리가 지하교회를 발견하고 이 지하교회를 폐쇄시키려고 갔다가 과수원을 보고 깜짝놀랐습니다.즉 아무도 이 과수원을 지키는 사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탐스러운 과일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기 때문입니다.즉 이것은 중국의 인민 농장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기 때문입니다./여러분!어떻게 이 공동체가 운영하는 과수원은 아무도 지키지 않는데 이렇게 운영될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욕심의 문제가 해결된 사람들이 모인 순수한 공동체였기 때문입니다.(물론 문자대로 이렇게 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2)A.여러분!저와 여러분은 주기 위해서 교회에 가십니까?받기 위해서 가십니까? B.직장에 가면 받을 것을 생각하십니까?줄 것을 생각하십니까?

 

4.그러면 우리는 왜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되지 않습니까?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4:32)(1)어떻게 수많은 성도들이 한 마음과 한 뜻이 되는 것이 가능했을까요?A.생각을 해보십시오~초대교회 성도가 5000명이라면,5000명은 수십년에 걸쳐서 5000명을 이룬 교회가 아니라, 얼마 안되는 기간동안 교회를 이루었던 5000명이 어떻게 한마음과 한뜻이 될수 있었을까요? (B.여러분!수십년동안 같이 생활을 해온 수백명의 사람들도 한 마음과 한뜻이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2)그런데 그들은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요? 여기서 우리가 오해하시면 안됩니다.“초대교회는 자신의 소유의식이 없었기 때문이죠라고 생각할수 있습니다.여러분!초대교회 교인들도 자신의 재물에 대한 소유의식이 있었습니다,그런데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주시 소유의 근원이 예수님이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예수님을 진정으로 마음에 오시기를 기도했고,그래서 성령님께서 그들의 마음에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C.오늘 예루살렘 초대교회는 특히 긍휼과 구제를 베푸는 일에 한마음과 한뜻이 되었습니.즉 하나됨 자체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위해서 하나가 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즉 초대교회 공동체는 예수님이 그들의 마음에 오셨고,성령님이 충만했기 때문에,그 성령님의 선한 생각을 따라서 구제와 긍휼의 사역을 위해서 하나가 되었습니다.그래서 재물의 문제가 해결된 것입니다.

 (3)A.물론 소유()는 중요합니다.우리도 지금 교회의 성전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데,<교회에 돈이 많으면 걱정이 없을 것이다>라고 생각할수도 있습니다./그러나,교회는 결코 돈으로 짓는 것이 아닙니다.즉 우리가 진정으로 이 교회를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커기 때문에 이 교회가 필요하다면 주님께서 하늘에서라도 주시지 않겠습니까?무슨 말입니까?예수님을 바라보는 마음이 더 중요합니다. /B.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돈이 많으면 더 행복한 가정이 될 것 같습니다.그러나 진리를 떠난 소유,나눔이 없는 소유,사랑이 없는 소유는 오히려 인간을 감옥처럼 가두는 족쇄가 될수 있습니다.(4)A.중세 사람들은 탐심을 다스리려면 세속을 떠나서 수도원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하지만 그것은 심각한 착각이었습니다.즉 수도원에서는 무소유로 사니깐 탐심이 발붙이지 못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사실은 수도원에서는 남에게 베풀 기회도 없습니다.그러니깐 탐심의 반대는 무소유가 아니라.“나눔입니다. 나누어 주는 것이 탐심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입니다.이것이 우리를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이것이 바나바(436절이하)가 누린 축복이고, 예수님의 마음을 가진 자가 누릴 축복입니다.

(5)A,여러분! 초대교회는 사랑의 공동체,나눔의 공동체를 이루려고 애를 쓰지 않았습니다.캠페인을 하고 제자훈련을 받고 세미나를 열지 않았습니다.B.그들은 오직 예수님만으로 사는 십자가의 복음으로 살았고,항상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그러니깐, 나눔의 공동체와 사랑의 공동체가 되었습니다.C.낚시꾼을 가득 실은 배 한 대가 그만 폭풍을 만나 바다 한 가운데서 고장나고 말았습니다.점점 날이 어두워지며 칠흑같은 밤이 다가오자,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은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그때 누군가가 비상 등불을 찾아 불을 밝혔습니다.그리고 배를 움직이기 위해서 노를 찾아냈습니다.그러나 방향을 알수 없었습니다.다시 사람들은 절망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한 사람이 나서서 이제는 등불을 끄라고 했습니다.사람들은 말도 안 된다며, “등불이라도 켜놓아야 혹시 구조대가 발견할수 있을지도 모르고 방향을 찾지 않겠느냐고 반대했습니다.그러자 등불을 끄자고 주장했던 사람이 강제로 꺼버렸습니다.불을 끄니깐,배 안에는 고요함이 넘쳤고 얼마쯤 시간이 지나자 한 사람이 갑자가 소리를 질렀습니다.“불빛이 보인다!육지의 불빛이 보인다!즉 주위가 어두워지자 등불 때문에 보이지 않던 육지의 반딧불 같은 불빛이 보인 것입니다.무엇입니까?소유로 인한 염려, 나의 인색한 마음, 나의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아야 진짜 살길이 보입니다.즉 내가 높고자 하는 마음이..내가 군림하고자 하는 마음이...십자가에서 죽어야,비로소 빛이신 예수님이 선명해지기 시작합니다.

(6)A.오늘날 우리교회(한국교회)의 위기는?교회가 세상과 비슷해 졌다는 데 있습니다.즉 교회가 회사 같기도 하고 정치판 같기도 하다는 것입니다.B.실상은 이런 상태인데,전도만 열심히 하니 더 눈총을 받는 것입니다.물론 교세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교회의 진정한 사람과 나눔이 드러나고 욕심이 사라지는 기적이 있는지?”를 질문해야 합니다.C.교회안에서 세상과 비슷한 이유가 무엇입니까?예수님과의 관계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소유보다 더 좋은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으면, 세상보다 더 좋은 주님의 나라를 알지 못하면, 나누어 주고 하나 되는 역사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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